글: Ekko An, Ryan Yoon
번역: Chopper, Foresight News
암호화폐 시장에서 거래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패턴을 발견했을 것이다. 토큰이 상장된 직후 가격이 빠르게 치솟았다가 곧바로 급락하고, 거래량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증발한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이런 급격한 변동성을 흔히 마켓 메이커 탓으로 돌린다.
이런 부정적 인상은 마켓 메이커라는 이름을 빌려 시세 조종을 하는 무리 때문에 생겼다. 이런 기관들의 영향으로 암호화폐 업계에서 ‘마켓 메이커’는 점차 ‘시세 조종 세력’과 동의어가 됐고,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투자자들이 이런 조작으로 손실을 보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조작 서비스’를 제공한 여러 기관을 기소했고, 한국에서는 유동성 공급을 명목으로 거래량을 부풀린 팀의 책임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불법 운영 주체로, 수수료를 받고 토큰을 팔아치웠을 뿐 유동성 공급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마켓 메이커가 아니었다.
명확한 자격 요건이 없어 누구나 마켓 메이커를 자칭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업계 전체의 신뢰가 훼손됐다. 이런 조작 행위는 시장 신뢰를 무너뜨리며, 유동성을 공급하는 마켓 메이커 본연의 업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시장에 마켓 메이커가 필요한 이유
마켓 메이커는 핵심 시장 참여자로서 매수와 매도 호가를 동시에 제시하며 유동성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보장한다. 마켓 메이커의 가치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들이 하는 일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유동성 공급자(LP)’와 ‘마켓 메이커’라는 두 표현이 자주 혼용된다.
넓은 의미에서 유동성 공급은 특정 자격을 갖춘 기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즉시 체결되지 않고 오더북에 걸려 상대 주문을 기다리는 모든 주문을 패시브 주문이라고 하며, 이는 다른 트레이더에게 거래 상대방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패시브 주문만 내도 넓은 의미에서는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Jump Trading 같은 고빈도 거래 기관이 자기 자금으로 오더북을 채우는 것도 이 범주에 든다.
공항의 환전소가 여행객에게 언제든 환전할 수 있게 해주듯, 마켓 메이커가 있는 시장에서는 매수자와 매도자가 서로 기다리지 않고도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 투자자와 토큰 발행사 모두 이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투자자가 얻는 것: 더 낮은 거래 비용
_마켓 메이커가 오더북에 미치는 영향_
수수료만이 투자자의 실질 손익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숨은 비용의 영향이 더 크다. 주문이 원하는 가격에 즉시 체결될 수 있는지, 대량 주문이 가격 변동을 일으키는지, 서로 다른 중앙화 거래소 간에 큰 가격 차이가 있는지 등이다. 마켓 메이커의 일은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매수·매도 양측에 촘촘히 주문을 내고, 상대 주문이 없을 때 거래 상대방 역할을 하며, 거래소 간 가격 차이를 메운다. 덕분에 투자자는 필요할 때 거래할 수 있고 거래 비용이 낮아지며, 여러 플랫폼에서 비슷한 가격을 받을 수 있다.
* 거래 비용 하락: 매수·매도 스프레드가 좁아지고 대량 주문에 따른 추가 슬리피지가 줄어든다 * 언제든 거래 가능: 언제나 거래 상대방이 존재한다 * 거래소 간 가격 차이 축소: 여러 거래소에 동시에 호가를 제시하고 차익거래로 가격 차이를 메운다
첫째, 거래 비용이 낮아진다.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의 차이 자체가 비용이다. 예를 들어 현재 매수 가격이 1,010원, 매도 가격이 990원이라면, 매수 직후 매도할 경우 바로 2% 손실이 난다. 주문 규모가 클수록 손실도 커진다. 최우선 호가의 유동성이 소진되면 주문은 다음 가격대를 계속 공략해 매수 비용이 높아진다. 마켓 메이커가 촘촘히 주문을 내면 스프레드가 좁아지고 각 가격대의 주문량이 늘어나 투자자의 거래당 슬리피지 손실이 줄어든다.
둘째, 투자자는 언제든 사고팔 수 있다. 거래에서는 원하는 시점에 포지션을 열고 청산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유동성이 낮은 토큰은 매도자가 매수자를 기다려야 하고, 기다리는 동안 가격이 계속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정상적인 장세에서는 마켓 메이커가 계속 주문을 내고 거래 상대방 역할을 한다. 시장 거래가 한산하더라도 매도자는 즉시 체결할 수 있고 매수자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토큰 발행사가 얻는 것
_토큰 대여를 통한 마켓 메이킹_
토큰 상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토큰은 상장 후 지속적으로 거래돼야 사용자와 투자자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토큰이 공정한 가격을 형성할 수 있다. 마켓 메이커가 발행사를 대신해 거래 판을 유지하면 발행사는 두 가지 이점을 얻는다.
* 거래 안정성: 소액 주문으로 급격한 시세 변동이 일어나기 어렵다 * 가격 조종 의혹 회피: 독립적인 제3자 마켓 메이커가 호가를 제시하고 발행사는 토큰만 대여한다
첫째, 발행사는 거래가 안정적인 시장을 갖게 된다. 토큰은 상장 후 매일 시장에서 다시 가격이 매겨진다. 사용자는 제품을 쓰기 위해 토큰을 사고, 투자자는 프로젝트 전망을 바탕으로 토큰을 사고판다. 참여자들이 원활하게 드나들 수 있어야 토큰 가격이 공정해진다. 유동성이 얇은 토큰은 소액 주문 한 건으로도 큰 폭의 등락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높은 변동성은 불확실성을 키우고, 프로젝트 펀더멘털의 좋고 나쁨과 무관하게 프로젝트 측의 평판을 훼손한다.
둘째, 시세 조종 의혹을 피할 수 있다. 토큰 발행사가 자사 토큰을 직접 사고팔면 시세를 조종해 가격을 올리고 내린다는 의심을 받기 쉽다. 그래서 관련 거래를 독립 마켓 메이커에 맡기고 발행사는 토큰만 대여한다. 합법적인 위탁 계약에는 일반적으로 가격 조종 금지 조항이 명시된다.
간단히 말해, 투자자는 필요할 때 거래하고 비용을 낮출 수 있으며, 토큰 발행사는 토큰이 안정적으로 유통되는 거래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마켓 메이커가 버는 매수·매도 스프레드는 본질적으로 거래자가 즉시 체결을 위해 지불하는 서비스 비용이다. 업계 경쟁이 이 수익을 압박하면서 유동성이라는 혜택은 결국 모든 시장 참여자에게 돌아간다.
암호화폐 마켓 메이커와 전통 금융 마켓 메이커의 차이
암호화폐 마켓 메이커의 업무 본질은 전통 금융의 마켓 메이커와 다르지 않다. 차이는 놓인 시장 환경과 적용되는 규제 규칙에 있다. 주식시장의 마켓 메이커는 거래소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성숙한 규제 체계 아래에서 영업한다. 반면 암호화폐 시장은 아직 마켓 메이커와 중앙화 거래소, 토큰 발행사 간의 위탁 계약을 규율하는 규칙이 없다.
진입 주체: 면허 기관과 계약 요건이 없는 기관
전통 금융에서 마켓 메이킹은 법률이 명확히 정의한 업무다. 금융기관은 심사를 통과한 뒤 거래소와 정식 계약을 맺고 약정에 따라 지속적으로 호가를 제시하면 수수료 감면을 받을 수 있다. 거래소는 어느 기관이 어느 종목의 마켓 메이킹을 맡는지 공개하고, 오랜 기간 형성된 법률과 판례가 무엇이 합법적인 마켓 메이킹인지 명확히 규정한다.
암호화폐 시장은 전혀 다르다. 마켓 메이커는 같은 일을 하지만, 마켓 메이커가 중앙화 거래소와 어떻게 정식 계약을 맺고 양측이 각각 어떤 의무를 지며 어떤 보상을 받는지 규율하는 제도가 거의 없다. 두 시장에는 두 가지 핵심 차이가 있다. 첫째, 계약 규칙의 부재다. 무엇이 합법적인 마켓 메이킹인지, 어떤 기관이 거래소의 위탁 마켓 메이킹을 맡을 수 있는지, 그에 따른 의무와 수익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대한 표준 정의가 없다. 둘째, 암호화폐 시장 고유의 구조적 위험이다. 중앙화 거래소가 직접 마켓 메이킹에 나서거나, 마켓 메이커가 발행사와 비공개 사적 계약을 맺는 왜곡된 구조가 매우 흔하다. 규제 당국은 현 단계에서 완전한 체계를 구축하기보다 드러난 위험을 우선 처리한다. 예를 들어 거래소의 자체 마켓 메이킹 금지, 비공개 계약 공개 요구 등이다.
한국 시장도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법규는 중앙화 거래소의 자체 마켓 메이킹을 엄격히 금지하지만, 특정 마켓 메이킹 업무가 합법인지 판단하는 통일된 기준과 공식 절차는 여전히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짚어야 한다. 규제 공백은 거래소·증권사와 체결하는 정식 위탁 계약을 겨냥한 것이며, 이런 계약 업무에만 면허가 필요하다. 단순히 자기 자금으로 주문을 내고 거래하는 것은 면허 유무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합법적인 활동이다. EU의 MiCA 규칙도 같은 이치다. 거래소에서 자기 자금으로 마켓 메이킹을 하는 데는 면허가 필요 없고, 고객을 대상으로 마켓 메이킹 서비스를 제공할 때만 자격이 필요하다.
계약 상대: 거래소, 중앙화 거래소, 토큰 발행사
암호화폐 마켓 메이킹과 전통 금융의 가장 직관적인 차이는 토큰 발행사가 마켓 메이커에게 위탁하는 계약이 매우 흔하다는 점이다. 그중 ‘무계약 자기매매 모델’은 성격이 다르다. 마켓 메이커가 누구와도 계약하지 않고 서비스 수수료도 없이 자기 자금만으로 자체 전략에 따라 거래하며, 유동성은 거래가 가져오는 부수적 결과다. 이는 앞서 말한 넓은 의미의 유동성 공급으로 합법적인 업무이며 면허 요건과 무관하다. 토큰 대여 모델도 비슷하다. 마켓 메이커가 자율적으로 거래를 결정하고 가격 위험을 부담하며, 발행사가 거래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한 본질적으로 자기매매와 같다.
위험은 거래량을 성과 지표로 삼는 발행사 위탁 계약 유형에 집중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런 계약은 거래소가 발주하는 위탁 계약과 자금 출처, 위험 부담 주체가 다르고, 조항도 천차만별이다. 스프레드 설정부터 상장·락업 해제(언락) 기간의 거래 전략까지 계약서에 명시된다. 그러나 거래량 부풀리기를 핵심 성과 목표로 삼는 계약은 자전거래와 허위 거래를 유도하기 쉬우며, 계약 내용이 전 과정에서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것이 업계의 큰 문제점이다.
거래 환경: 단일 시장과 분산 시장
_중앙 청산 상대방 유무에 따른 결제 메커니즘 비교_
주식은 단일 거래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거래되며, 거래소와 청산기관이 이상 거래를 방지하고 결제 위험을 관리한다. 암호화폐 시장은 전 세계 여러 중앙화 거래소에 걸쳐 연중무휴로 거래되고 이런 보호 장치가 없어 마켓 메이커에 많은 위험을 안긴다.
첫째, 암호화폐 시장은 24시간 7일 내내 운영되고 전 세계 여러 거래소에 분산돼 있어 플랫폼 간 가격 차이가 쉽게 발생한다. 마켓 메이커는 자산을 여러 거래소에 분산 배치해 가격 차이를 메워야 하는데, 입출금 중단 같은 네트워크 장애가 발생하면 이 차익거래 메커니즘이 곧바로 멈춘다. 둘째, 위험 헤지 수단이 제한적이다. 시장에 서킷브레이커 같은 보호 장치가 없고 고레버리지 선물 거래가 성행해, 마켓 메이커는 선물 포지션으로 현물 보유 위험을 헤지하는 데 의존할 수밖에 없다. 2025년 10월 하루 약 190억 달러 규모의 연쇄 청산 사태가 대표적 사례다. 거래소의 자동 감축(ADL) 메커니즘이 작동하면 마켓 메이커의 합법적 헤지 포지션까지 강제 청산됐다. 헤지 보호를 잃은 마켓 메이커는 긴급히 주문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시장은 더욱 격렬하게 불안정해졌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중앙 청산 상대방 결제 메커니즘이 없다는 점이다. 전통 금융 체계에서는 거래와 결제에 보증이 있다. 암호화폐 마켓 메이커는 거래를 위해 자산을 각 거래소에 직접 예치해야 한다. 거래소가 파산하면 2022년 FTX 사태처럼 마켓 메이커가 플랫폼에 맡긴 자산은 전액 손실을 입을 수 있고 회수하기도 매우 어렵다.
현재 마켓 메이커 업계의 다섯 가지 취약점
마켓 메이킹 메커니즘은 원활한 거래의 기초다. 그러나 제약이 없으면 범람하는 가짜 마켓 메이킹 업무가 시장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암호화폐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정확히 식별하고 실현 가능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아래 다섯 가지 취약점은 마켓 메이킹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모니터링 체계가 없어 합법적 유동성 공급과 불법 시세 조종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데서 나온다. 암호화폐 마켓 메이킹 업계에는 이제 명확한 기준이 절실하다.
정상적인 리스크 관리가 시장 조작으로 오인되기 쉽다
외부에서 보면 마켓 메이커의 일상적 리스크 관리가 시장을 교란하거나 가격을 조종하는 행위로 오인되기 쉽다. 업계 관계자들은 가장 오해받기 쉬운 리스크 관리 행위 네 가지를 정리했다. 규제가 성숙한 시장이라도 합법성 경계를 사전에 정의하지 않으면 이런 오해는 여전히 발생한다.
한국 주식시장이 대표적 사례다. 2021년 금융감독원은 증권사 9곳의 마켓 메이커가 호가를 빈번히 취소·변경한 행위를 시장 교란으로 판단해 487억 원(약 3,500만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시장의 마켓 메이킹 업무는 곧바로 중단됐다. 1년 뒤인 2022년 7월 증권선물위원회는 결론을 뒤집었다. 빈번한 가격 변경과 주문 취소는 의무를 이행하고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필요 조작이며, 이들 기관의 취소·변경 비율(95.68%~99.55%)은 뉴욕증권거래소 수준(약 94.6%)에 가까웠고 사전에 명확한 판단 기준이 없었으므로 관련 행위는 위법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조사 기간 시장에는 꼬박 1년 동안 마켓 메이커가 없었다.
암호화폐 시장에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같은 거래 행위를 두고 규제하는 측은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방어하는 측은 유동성 공급이라고 주장한다. 합법적인 마켓 메이커조차 자신의 거래가 위법으로 인정될지 예측할 수 없어 일부 기관은 아예 시장에서 철수한다.
해법은 합법성 기준을 미리 정하는 것이다. 판단의 핵심은 단순한 주문 취소 빈도가 아니라 거래 의도여야 한다. 이는 극단적인 호가만 금지하는 미국의 규제 사고와도 일치한다. 업계 관계자들이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판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사전에 합의된 계약과 내부 리스크 관리 규칙의 범위 내에서 운영했는가 * 해당 운영이 실제로 마켓 메이커 자체의 가격 위험을 낮췄는가 * 양방향으로 주문을 내며, 한 방향으로 가격을 밀어 올리려는 목표가 없는가
예를 들어 시세가 격렬하게 변동할 때 마켓 메이커가 현물을 팔고 동시에 같은 수량의 선물을 사면 외부에는 미친 듯이 투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전체 보유 포지션의 위험을 헤지하는 정상적 리스크 관리다. 반대로 악재를 유포하면서 대규모 현물을 팔고 헤지도 하지 않는다면 이는 리스크 관리가 아니다.
규제 당국과 거래소가 이 기준을 사전에 공표하면 합법적 유동성 공급자는 안심하고 영업할 수 있고 불법 조작 행위도 더 쉽게 식별된다. 기준 부재의 폐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합법적 기관이 의심받는 동시에, 부정한 의도를 가진 기관이 마켓 메이커 신분을 도용하기 쉬워진다.
거래량 조작 기관의 마켓 메이커 신분 도용
앞 절에서는 합법적 마켓 메이커가 오인되는 문제를 다뤘다. 반대 문제도 존재한다. 마켓 메이커가 전혀 아닌 많은 기관이 외부에 자신을 마켓 메이커라고 칭한다. 시장의 ‘마켓 메이커 스캔들’ 대부분은 마켓 메이커를 자처한 이런 제3자 기관들이 일으킨 것이다.
Gotbit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 검찰 정보에 따르면 2018~2024년 Gotbit은 거래량 조작 서비스를 판매하며 다중 계정으로 반복적인 자전거래를 통해 허위 거래량을 만들었다. 목적은 프로젝트 토큰의 시가총액 순위를 높이고 프로젝트가 주요 거래소에 상장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 기관의 창업자는 유죄를 인정해 8개월형을 선고받았고, 회사는 약 2,300만 달러 상당의 암호화폐 자산을 몰수당했다.
일부 마켓 메이커들은 이런 기관의 비즈니스 모델이 허위 거래량을 만드는 것이며 스스로는 아무런 가격 위험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거래량만 보는 평가 체계에서는 이들의 데이터가 오히려 매우 훌륭해 보이기까지 한다.
따라서 마켓 메이커 평가 지표는 ‘거래량’에서 실제 체결 가능한 깊이로 전환해야 한다. 거래량은 자전거래로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업계의 진짜 마켓 메이커는 거래량을 부수적 결과로만 보고 다음을 중점적으로 본다.
* 현재 가격 ±1%~2% 구간의 오더북 깊이는 어떤가 * 일정 규모의 주문 한 건이 얼마나 큰 가격 슬리피지를 유발하는가 * 매수·매도 양방향 호가가 동시에 온라인에 있는 시간 비중은 얼마인가
거래량이 아무리 많아도 오더북이 얇고 소액 주문으로 가격이 크게 움직인다면 실제 유동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핵심 판단 기준은 외부 트레이더가 공정한 가격에 원하는 규모를 체결할 수 있는가다. 거래소와 프로젝트 측이 이 지표로 마켓 메이커를 선별하면 조작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기관은 점차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다.
거래소와 발행사의 위탁을 받아 외부에 마켓 메이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에는 등록 또는 면허를 요구할 수 있다. 계약 단계에서 문턱을 두면 Gotbit처럼 서비스 수수료를 받고 시세를 조작하는 기관을 원천적으로 걸러낼 수 있다. 순수 자기 자금으로 자기매매하는 참여자는 면허 관리 대상에 포함할 필요가 없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EU의 MiCA도 같은 논리다. 자기 자금으로 거래소에서 마켓 메이킹을 하는 데는 면허가 필요 없고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때만 자격이 필요하다.
숨겨진 계약 당사자와 이해상충 구조
_MOVE 사례의 이중 대리_
믿을 만한 기관을 골랐다 해도 계약 주체 간 관계가 투명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여전히 발생한다.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토큰 발행사와 마켓 메이커의 위탁 계약에서 계약 주체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어둠 속에 숨어 있으면 같은 기관이 거래 양측의 대리인을 동시에 맡는 왜곡된 구조가 생기기 쉽다.
MOVE 사건이 대표적이다. Movement Foundation은 총공급량의 5%인 6,600만 개 토큰을 중개업체 Rentech(스스로 Web3Port의 자회사라고 밝힘)에 맡겨 유동성 공급을 위탁했다. 이후 드러난 바로는 Rentech가 같은 계약에서 한쪽으로는 재단의 대리인, 다른 한쪽으로는 Web3Port의 대리인이 되어 사실상 동일 주체가 거래 양측을 동시에 대리했다.
이 토큰들은 2024년 12월 상장 당시 매수세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시장에 곧바로 매도됐다. 바이낸스는 이 마켓 메이커를 퇴출하고 관련 수익 3,800만 달러를 동결했으며, Coinbase는 이후 MOVE 거래를 중단했다. 재단은 이번 매도가 자신의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계약은 명목상 유동성 서비스 협약이었지만 실제로는 양방향 호가가 전혀 없었고 프로젝트 측 토큰을 일방적으로 매도한 것에 불과했다.
따라서 합법적 마켓 메이킹의 전제는 공정한 계약 조항과 투명한 계약 관계다. 계약의 실질적 측면에서 합법적 마켓 메이킹 협약에는 두 가지 핵심 원칙이 있다. 마켓 메이커가 실제 가격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고, 토큰 발행사가 가격 방향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큰 대여 모델에서는 마켓 메이커가 빌린 토큰에 자기 자금을 더해 양방향으로 호가를 낸다. 계약 만료 후에는 같은 수량의 토큰만 반환하며, 전 과정에서 가격에 영향을 주도록 지시받지 않는다. 표준 계약에는 반드시 다음 사항이 명시돼야 한다.
* 자전거래 금지 * 일방적 가격 추진 금지 * 매수·매도 스프레드 상한 * 최소 주문 규모
옵션 모델도 마찬가지다. 마켓 메이커가 일상적 호가 제시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발행사가 옵션 조건만 약정하며 개별 거래에 개입하지 않으면 원칙에 부합한다.
두 번째 요구사항은 계약 공개다. 최소한 거래소와 규제 당국은 어느 기관이 마켓 메이킹을 하는지, 토큰 규모와 계약 조항은 무엇인지, 중개업체가 양측을 동시에 대리하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바이낸스는 2026년 3월부터 프로젝트 측에 이런 정보를 제출하도록 요구해 왔다. 더 나아가 주식거래소가 주식 마켓 메이커를 공개하듯, 투자자도 특정 토큰의 마켓 메이커가 누구인지 알 권리가 있어야 한다.
거래소와 마켓 메이커가 동일 주체인 경우
_계열 마켓 메이킹 업무 격리_
마켓 메이커가 중앙화 거래소의 계열 주체라면 이해상충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한 회사가 거래소, 수탁, 자기매매를 동시에 운영하면 계열 마켓 메이커는 다른 이용자가 갖지 못한 특권을 쉽게 얻을 수 있다.
FTX와 Alameda Research가 전형적인 사례다. Alameda는 FTX 플랫폼의 핵심 마켓 메이커로 다른 이용자가 받을 수 없는 신용과 특권을 얻었다. 미국 규제 조사에서는 FTX 이용자 자금이 Alameda로 흘러가 투자와 손실 메우기에 사용된 것으로 판정됐다. 두 기관은 2022년 나란히 파산했다.
문제는 마켓 메이커라는 신분 자체가 아니라 이런 신용 권한과 운영 여지에 감독이 없어 결국 이용자 자산이 유용된 데 있다. 해법은 계열 마켓 메이킹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격리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것이다.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는 2023년 보고서에서 이런 이해상충을 중점 위험으로 꼽았고, 홍콩은 이후 관련 규제 규칙을 시행했다. 2026년 2월 홍콩증권선물위원회(SFC)는 거래소 계열 주체의 마켓 메이킹 업무를 허용하되 세 가지 강제 조건을 붙였다.
* 마켓 메이킹 업무 부문과 거래소 기능의 격리 * 양자 간 명확한 업무 경계 설정 * 마켓 메이킹 업무 개시 전 규제 당국에 독립 제3자 전문기관의 평가 보고서 제출
이 규칙은 경계를 긋고 지속적으로 감시해 우대와 내부정보 공유를 막는다. 한국의 중앙화 거래소가 향후 계열사를 통해 마켓 메이킹을 하더라도 처음부터 이 원칙을 따라야 한다.
위기 때 강제 의무가 없어 마켓 메이커가 가장 먼저 주문을 취소
_호가 제시 의무와 인센티브_
앞의 네 가지는 정상 상황에서의 취약점이고, 마지막은 시세가 급락할 때만 터지는 문제다. 대다수 암호화폐 마켓 메이커는 하락장에서 강제 이행 의무가 없다. 손실이 계속 커지면 합리적 선택은 호가를 거두는 것이고, 오더북에 거대한 공백이 생기며 시장 붕괴가 가속된다. 앞서 언급한 2025년 10월 10일 장세가 대표적이다. 대량의 암호화폐 자산이 하루에 40%~70% 하락했고, 업계 관계자들은 마켓 메이커의 집중 주문 취소가 시장 통제 불능의 핵심 요인이라고 본다.
위기 순간의 집단 주문 취소를 막으려면 명확한 이행 의무와 함께 인센티브를 설계해야 한다. 구속력 있는 계약에 묶인 기관은 위기에서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 관계자 인터뷰에 따르면 한 암호화폐 자산이 거시 악재로 급락했을 때 그 마켓 메이커는 스프레드만 넓혔을 뿐 호가를 철회하지 않아 거래 중단을 막았다. 차이는 계약상 의무와 리스크 관리 지침에서 나왔다.
전통 주식시장은 이미 이 메커니즘을 규제에 반영했다. 한국거래소(KRX)는 마켓 메이커에 단일 종목의 일일 호가 제시 시간 80% 이상, 분기 호가 제시 시간 90% 이상을 요구한다. 기준을 충족해야 인센티브를 받고, 미달하면 감점되며 감점이 일정 기준에 이르면 위탁이 즉시 종료되고 1년간 마켓 메이킹 업무를 맡을 수 없다.
동시에 이행 효과를 측정할 지표도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충격 이후 회복 상황을 판단할 때 가격 반등이 아니라 거래 기능의 복구 여부를 본다.
* 확대된 스프레드가 다시 좁혀졌는가 * 철회된 주문량이 다시 채워졌는가 * 거래소 간 가격 차이가 수렴했는가 * 정상 상태로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렸는가
이 지표를 이행 성과 평가 기준으로 삼고 인센티브를 연계하면 마켓 메이커는 위기 때 곧바로 이탈하기보다 호가를 유지할 유인이 커진다.
사후 처벌에서 상시 감독으로
시장의 마켓 메이커에 대한 불신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 절의 내용을 종합하면 문제의 근원은 마켓 메이킹 자체가 아니라 누구나 마켓 메이커를 자칭할 수 있고 업계에 ‘정상 업무’를 규정하는 기준이 없다는 데 있다.
한국 현행 법률은 여전히 이런 모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규제 공백이 어디에 있는지 구분해야 한다. 자기 자금으로 주문을 내고 거래하는 것, 빌린 토큰을 사용해 거래하는 것 자체는 모두 합법이다. 다른 거래와 마찬가지로 행위가 시세 조종을 구성하면 처벌되지만, 순수 자기매매 자체는 위법이 아니다. 회색지대는 위탁 계약 업무에 집중된다.
한국의 현재 규제 공백은 다음과 같다.
* 거래소와 정식 위탁 마켓 메이킹 계약을 체결할 합법적 경로가 없다. 현행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시세 조종만 금지할 뿐 합법적 마켓 메이킹에 대한 면책 조항을 두지 않는다. 거래소와 마켓 메이커가 호가 제시 의무를 포함한 계약을 체결하면 관련 거래가 조작으로 인정될 위험이 있다. * 위탁제 마켓 메이커에 대한 등록·면허 체계가 없다. * 기업 주체가 원화 거래소에서 계좌를 개설해 거래에 참여하기 어렵다.
즉 한국 규제 체계는 유동성 공급 자체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 위탁 마켓 메이킹 업무를 정식으로 위탁하고 규제 안에 포함시킬 채널이 없는 것이다. 계약 기반 마켓 메이커에는 합법적 감독 경로가 없어 규제 당국은 사고가 난 뒤에야 처벌할 수 있다.
세계 주요 관할권은 모두 같은 종류의 규칙을 추진하고 있다.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전통 금융에 맞추는 동시에 합법적 유동성 공급자를 법규에서 공식 인정하는 것이다.
EU: MiCA는 2024년 12월 30일 전면 발효됐으며 암호화폐 자산 가격 조종을 금지한다. 자기 자금으로 거래소에서 마켓 메이킹을 하는 데는 면허가 필요 없고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때만 자격이 필요하다. Keyrock, Flowdesk 등 주요 마켓 메이커는 2026년 6월 고객 업무를 수임하기 위한 해당 면허를 취득했다.
홍콩: 규제 당국은 거래소 유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2026년 2월 증권선물위원회를 통해 거래소 계열 주체의 마켓 메이킹을 허용했으며, 전제 조건은 업무 격리다.
일본: 2026년 7월 법안 개정을 통과시켜 암호화폐 자산을 《금융상품거래법》에 포함하고 내부자 거래 금지 조항을 신설했다.
지역마다 출발 경로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조작을 엄격히 단속하면서 합법적 마켓 메이커에게 규제 체계 안의 합법적 위치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한국 시장도 이 균형점을 찾아야 하며, 마켓 메이커를 전면 부정하거나 무조건 미화하는 것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앞서 설명한 구조적 취약점에 대응해 필요한 규제 개혁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입법으로 합법적 업무와 위법 행위를 구분한다. 업계 공통 판단 기준을 채택한다. 마켓 메이커가 가격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는지, 일방적 가격 조종 목표가 없는지, 외부 투자자가 정상적으로 체결할 수 있는지. 기준을 미리 명확히 해 정상적 리스크 관리가 조작으로 오인되지 않게 한다. * 위탁 마켓 메이커의 자격 요건을 명확히 한다. 면허·등록 의무는 거래소·발행사의 위탁을 받고 이행 의무가 붙은 기관에만 적용한다. 자기 자금을 이용한 자체 유동성 공급은 현행을 유지하며 자격이 필요 없다. 계약 단계에서 거래량 조작 기관을 걸러낸다. * 계약 투명화. 최소한 거래소와 규제 당국은 마켓 메이킹 주체, 토큰 규모, 계약 조항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투자자도 해당 토큰의 마켓 메이커를 조회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 이해상충 관리. 거래소 그룹 내에서 마켓 메이킹을 할 경우 업무 격리와 외부 평가를 의무화하고 홍콩 모델을 참고한다. * 의무와 인센티브 연계. 한국거래소의 마켓 메이킹 메커니즘을 참고해 호가 유지 의무를 설정하고 대응 인센티브를 붙여 마켓 메이커가 시장 위기 때 남아 있도록 한다.
지금이 바로 이 법규 체계를 구축할 적기다. 2025년 6월 심의에 회부된 《디지털자산기본법》 초안에는 이미 거래소가 위탁한 마켓 메이킹 업무를 시세 조종 판단 범위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2026년 9월, 한국 금융위원회(FSC) 담당 관계자는 마켓 메이킹 감독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평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10월 국회 감사 회의에서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법안 문안이 이미 작성돼 최종 협의 단계에 들어갔으며 정부 목표는 연내 입법 완료라고 말했다.
다음 핵심 쟁점은 이미 마켓 메이킹을 허용할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허용할지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초안은 거래소 위탁 마켓 메이킹을 핵심으로 하며 주식시장 모델을 벤치마크한다. 반면 이 글에서 다룬 많은 혼란은 바로 토큰 발행사의 위탁 계약에서 비롯된다. 법안이 발행사 위탁 마켓 메이킹을 규정하지 않으면 가장 큰 규제 사각지대가 여전히 남는다.
기업 진입 개방도 이 입법과 연동돼 있다. 2025년 2월 한국 금융위원회는 약 3,500개 상장사와 전문투자자가 암호화폐 자산을 거래할 수 있도록 시범 허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관련 가이드라인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고 《디지털자산기본법》과 동시에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관 자금 진입을 위한 규칙을 마련하는 단계에서 마켓 메이커를 규제에 포함하지 않으면 기업 자금이 들어온 뒤에도 유동성 공급 업무는 계속 체계 밖에 머물 것이다. 한국 암호화폐 시장이 기관 자금을 안정적으로 받아들이려면 먼저 마켓 메이커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야 한다. 사후 처벌만으로는 합법적 마켓 메이커를 붙잡을 수도, 신분을 도용한 가짜 마켓 메이커를 걸러낼 수도 없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마켓 메이커를 단속 대상에서 상시 감독 대상으로 전환하는 핵심 계기가 될 수 있다.




